Categories
Work of art 작품

미체험세대의 오월 주먹밥

30회 4∙3미술제 <경계의 호위 PART2>
2023.04.01 – 04.30
산지천갤러리

May Day in Jeju(오버랩 OverLab 김선영 기획) 출품작 강수지 이하영의 <위장술胃臟術>(2023)을 보고

 강수지, 이하영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두 분이 보내신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이메일이라는 비물질의 형식을 띄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종이에 인쇄된 물질, 아니, 작품이었던가요? 전시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때에만 받을 수 있는 편지이니, 퍽 흥미롭습니다. 결국 작업이라는 것도 소통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이니, 나름대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괜찮겠지요. 

 광주에서 오셨다고요. 두 분의 작품에 담겨있는 질문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침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보내신 편지에 이런 문장들을 읽었습니다. 

“오월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수많은 기념 행사와 기억 굿즈가 ‘정치적 무관심 및 체제 순응적 경향이 강한 MZ세대’를 향한 쓴소리처럼 느껴질 때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분투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오월 정신에는 일상의 불평등과 권위주의에, 생태와 자연의 파괴에, 경쟁과 개발의 논리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포함될 수 없는 걸까요?”

이하영, 위장술(胃臟術)0, A4 종이에 프린트 4장, 가변 설치, 2023 첫번째 장 일부

 지난 1일 개최된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의 마지막 발표, 토미야마 카즈미(豊見山和美, TOMIYAMA Kazumi)님이 떠올랐습니다. 이 분은 오키나와현립 공문서관 아키비스트이자 기획자로서 동아시아 평화예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분입니다. 2014년부터 오키나와의 예술인들이 추진했던 ‘스디루(Sudiru, 혁신 부활 재생을 뜻하는 오키나와어)’ 예술 프로젝트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를 하셨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젊은 세대 작가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인’ 작가로 비춰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키나와 전투의 끔찍한 경험을 듣고 반전 평화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반일’이나 ‘반미’로 비춰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약하기 때문에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일본의 공교육은 역사의식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슬픔에는 공감하지만, 전쟁의 책임 문제는 회피한다.”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 자료집 43쪽

 기획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했고,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 못하는 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에서 ‘젊은 세대’ 작가들을 하나로 묶어 그 경향성을 말할 때, 사실 약간 반항심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을텐데, 발표자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사려깊은 대화를 시도해 보았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예요. <위장술胃臟術>(2023)이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발표자가 말한 50세 이하의 ‘젊은 세대’에 포함되는, 강수지 이하영 작가님이 작품으로 답변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 사회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발표문을 토대로 짐작해보건데, 일본의 극우 세력은 평화 운동가들을 향해 희생자 흉내를 낸다고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정권은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고,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대한 죄의식이 없지요. 그들은 여전히 제국주의를 꿈꿉니다. 때문에 전쟁 범죄에 대한 인정도 하지 않고요. 일본은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요? 그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까요?

마찬가지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또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지요. 전쟁 후 정말 짧은 시간 산업화, 민주화를 이뤄낸 세대에게 현재는 너무나 편리하고 살만한 시대인지 모르겠으나,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유년기부터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성공 신화를 학습하며 입시 경쟁, 취업 경쟁에 시달려온 ‘젊은 세대’에게는 그 ‘성공’와 ‘안정’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하면 n개의 포기만 늘어가는, ‘헬조선’일 뿐이었던 것 처럼요.

 낭만의 시대 사람들

 하루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어요. 소위 MZ세대는 1990년대를 ‘낭만의 시대’라고 부르더라고요. 아-! 저는 작게 탄식했습니다. 이 말은 즉, 지금은 낭만이 없는 시대라는 것이겠죠. 이웃이 없는 시대입니다. ‘근대’의 기념비로 채워진 폐허와 경쟁만 남은 시대입니다. 기후위기와 해수면 상승, 꺼질 줄 모르는 산불 행진 앞에서 무기력한 시대입니다. 

 저는 근대 국민 국가의 토대를 만들어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해, 농민들을 노동자로 만들어야 했던 ‘자본주의’에 대해, 공동체를 학살해야만 했던 ‘근대화’에 대해 공부합니다. 이 모든 단어들은 현재에도 유효한, 현대에도 진행 중인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들은 우리의 일상에 대한 것들입니다. 저는 제국주의 식민주의가 현대인의 일상에도 가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제국이 되고자하는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서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인류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인간과 사회의 폭력적 본성 일까요? 식민 지배 없이, 독립국가 대 독립국가의 관계가 기본값인 사회를 꿈꾸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일까요? 때문에 강수지, 이하영 두 분의 질문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편협한 생각입니다만, 사회의 많은 조직들은 질문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예술계라고 다르겠습니까. 수직적인 질서를 요구하는 조직은 아랫사람의 자존이나 존엄을 지켜주지 않아요. ‘탄압이면 항쟁이다.’를 일상에서 실천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때문에 오월 정신은, 4∙3의 세대 전승은 젊은 세대를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은 얼마나 민주적인지 되돌아보는 지점에서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아니, 상당히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야생 조류를 위한 오월 주먹밥

 아, 제가 넋두리를 너무 길게 했네요. 사실 편지를 읽기 전에는 ‘웬, 참새 한마리’ 했어요. 편지를 읽고 나서야 5∙18기념공원에 ‘첨단 기술 활용 지능형 관리시스템’으로 설치된 미디어월에 많은 새들이 충돌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사독재 폭력에 저항했던 시민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 또 다른 생명들의 무덤이 되었다니요. 자연을 군림하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짙은 그림자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의 유리창, 투명한 방음벽 등에 충돌하는 사고로 죽는 조류가 하루 평균 2만 마리 이상이라고 하는데(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검수 결과, 2022), 정말 무거운 숫자입니다. 동물권을 위한 야생조류유리창충돌 모니터링 활동과 실천에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현장에 비치해두신 ‘위장술(胃臟術): 버드 케이크 만들기’도 하나 챙겨왔습니다. 잘 간직 했다가 올 겨울 먹거리가 없는 야생 조류들을 위해서 만들고 설치해보겠습니다. 오월 정신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해방 광장의 주먹밥, 대동 세상의 그 주먹밥이지요? 강수지, 이하영 두 분의 <위장술(胃臟術)>(2023)은 문명이라는 폭력에 삶터를 빼앗긴 야생 동물들과 해방 광장을, 대동 세상을 만드는 실천입니다. 위장(胃臟)을 채우는 일, 함께 먹고 사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술가의 ‘위장술’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 재주가 지금 여기 우리 일상의 공존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덧붙이기

 답장에 대한 부담을 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생각날때 한 번씩, 작가님들의 다음 작업을 찾아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고
오버랩OverLab 웹사이트
연합뉴스, [광주소식] 5・18기념공원에 디지털 미디어월 설치, 2022.02.10
하루 2만 마리 새들의 죽음,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저감 캠페인



박민희 | 시각예술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와 역사 읽기에 흥미를 갖고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