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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에서: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후기 1

제14회 광주비엔날레 14th GWANGJU BIENNALE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Soft and Weak Like Water>
2023.04.07 – 07.09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비엔날레로 성장한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14회를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파빌리온 전시가 동시 진행되었다. 파빌리온은 일시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가설 건축을 뜻하는 용어다. 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본 전시와 별도로 각 국가 기관에서 협력하여 만든 전시관을 파빌리온이라 부른다. 이는 국외 비엔날레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전통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당초 ‘비엔날레’라는 제도 자체가 수입되어 온 것이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미술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비엔날레는 한 지역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유수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데에 가장 큰 매력이 있다. 특히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파빌리온 전시를 운영, 네덜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중국, 캐나다, 폴란드, 프랑스, 우크라이나 총 9개국의 기관과 협력하여 각 국의 특색이 드러나는 전시를 소개했다. 2018년 12회 당시 3개 기관, 2021년 13회 당시 2개 기관이 협력한 것에 비하면 명실상부한 파빌리온 전시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프로그램을 다 체험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통의 관객들은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나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한 곳은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전쟁 중인 나라에서, 타국의 비엔날레에 참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도대체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을까? 나의 의문에 답변이라도 해주듯 현장의 안내 문구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크라이나 미술은 이제 전쟁의 잿더미로 뒤덮였습니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은 매주 토요일에만 개장했는데, 오전부터 저녁시간까지 영화 세 편을 상영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자의 반 타의 반 사전 조사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광주에 방문했다. 하지만 이내 본 전시에 감화되어 모든 전시 현장에 방문하고 싶은 열정이 일었고, 결국 두 차례 여행 계획을 세워 모든 프로그램을 관람하는데 총 4박 6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관람은 두번째 광주 방문의 주요 목적이었다. 

▲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2022, 62분) 영화 포스터

모든 예술가는 증언하는 존재다. 한 사람이 처한 시대와 환경 속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기록하고 표현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사람들 같다. 그 기록들은 동시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2022, 62분)을 관람한 후, 진부하지만 명료한, 이 문장이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예술가는 증언한다.”

막스 리트비노브(Max Lytvynov) 감독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줌과 동시에 마리우폴이라는 아름다웠던 항구 도시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빈 캔버스(canvas)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영화. 화가는 마리우폴의 아름다운 건축과 풍경으로 화폭을 채우고, 또 그것들이 폭격을 맞아 변해가는 모습도 그린다.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 폭격 당일부터 마리우폴을 빠져나올 때까지 자신이 보고 겪은 모든 것들을 글로 기록한 저널리스트 나디아(Nadiya Sukhorukova)의 증언, 핸드폰으로 찍은 현장의 모습들, 그리고 또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들이 오버랩 되어 현장의 긴박함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더불어 관객들은 깨닫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예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나는 적지않은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글이나 흑백 사진 영화 스틸컷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참상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간접 체험하고 있는 지금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소름돋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눈물을 훔친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 햇살 속으로, 평화로운 광장으로 총총 사라진다. 우리는 지구의 다른 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에 잠시 다녀왔을 뿐이다. 아주 시원하고 쾌적한 극장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언젠가 SNS에서 본 장면처럼, 불타는 숲을 구경하며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처럼, 곧 맛있는 식당을 찾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영화 후기를 나눌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현실에 개탄하고 또 한 편으로는 증언으로 가득찬 다큐멘터리에 회화(painting)을 첨가한 감독의 미장센에 감탄하면서. 내가 슬퍼하고 있는지, 놀라워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그리고 이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2022, 62분)은 인터넷에서 관람 가능하다.
단, 한글 번역은 없다. 

폭격이 일상이 된 삶. 폐허의 쓰레기 더미가 자원이 되어버린 현대인. 인간과 문명에 대한 환멸과 증오.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 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사회학 수업에서 배웠던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화두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진정한 인간적 상태’란 무엇일까. ’인류’는 ‘미지의 영역’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파헤치고, 개발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은 ‘인류’에 속했다는 것만으로 자부심 혹은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걸까. 다른 성격을 가진 인류가 될 수는 없는걸까. 그저 파도처럼 휩쓸려 가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가.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 오늘날,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 내가 살던 아파트가 폭격에 맞아 산산조각나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 보단 낫겠지. 방사능 오염수를 영문도 모른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후쿠시마 앞바다 생명체들의 상황 보단 낫겠지. 내 집이 아니라서, 우리 동네 앞바다가 아니라서 다행인걸까.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느끼는 절망과 분노, 그럼에도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그럼에도 당장 안락한 삶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나 자신 인간에 대한 환멸과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무책임에 대한 증오. 그들은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가 맞다. 과학적으로.
“계몽의 지칠줄 모르는 자기 파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옳다는 생각이 든다. 아도르노는 1969년 별세했지만, 만약 그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통탄했을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 보다도 더 어두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책을 계속 발간했겠지.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맴돌고 있던 광주비엔날레 관람 후기를 이제야 꺼냈다.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영화를 빌어 절망을 이야기 해본다. 전쟁을 피해 다른 나라, 타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잃지 않은 희망’이야말로 희망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절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총 16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진행된 본 전시에서 80여명 작가들이 참여했고, 본 전시와 관련된 4개의 장소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예술공간집,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전시가 있었다. 더불어 9개 국가의 파빌리온 전시까지. 관련 후기를 남기고 싶어 꿍꿍하고 있다. 본 글은 고작 1개 파빌리온 관람 후기일 뿐이다.

박민희 | 시각예술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와 역사 읽기에 흥미를 갖고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