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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전시 Work of art 작품

제주의 또 다른 풍경 속으로: <아마도, 황홀> 전시 후기

산지천갤러리 우수기획전 <아마도, 황홀>
2023.05.09 – 06.28

참여작가: 김명선, 문봉순, 박정근, 양동규, 한용환
기획: 김유민

“이제 가끔가다 원하여 좋은 인연이 되면
행사로라도 잘 대접하겠습니다.” 

– 문봉순∙박정근(아트랩틈) “신이 이사가는 날”(1채널 비디오, 10분, 2023) 중에서.

이번 전시에서 상영된 “신이 이사가는 날” 중엔 위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올해 3월 28일 성산읍 수산리 신술당에서 진행된 제(祭) 말미(심방의 읊조림)의 일부분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왔을지 모를 마을 신당. 하지만 땅 주인이 신당을 없애겠다고 했고, 그곳에 살던 신들은 퇴거 통보를 받은 셈이다. 이에 단골(신앙민)들은 심방을 모셔 신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궷돌 3개를 옮겨 이사를 진행했다. 작품에서는 이사 과정과 함께 이사하는 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디(여기)는 일뤠할망인 나가 사는 성산읍 수산리 신술당이여. 저기 토산서 가지 갈라온 여드레한집이영, 산신이영, 족지할망, 허물할망이영 집안 일월조상들이영 고치(같이) 살아왐주게. 우리 수산리 애기들 아팡 오믄 나가 다 고쳐줘신디, 제2공항 들어선덴 허멍 땅값 하영(많이) 받젠, 나 사는 디를 흙으로 메와불켄 하는 거 아니? 나가 키운 조손들이 되려 날 쫓아내부렴서.”

– 문봉순∙박정근(아트랩틈) “신이 이사가는 날”(1채널 비디오, 10분, 2023) 중에서. 괄호는 필자 첨가.

그리고 바닥에 돌이 하나 놓여 있다. 아마도 신당에 있던 것일 터. 그리고 돌 옆에 글. “웃손당 금백조, 셋손당 세명주, 알손당 소로소천국, 웃당 일뤠, 알당 요드레, 안족지 밧족지 할마님, 물비리 당비리 절비리 차지하고 피부병 걷어주던 할마님, 산신백관 산신대왕님, 세화리 금상한집님, 현씨일월, 고씨일월, 방울할마님 옵서 가게.” 한 개의 신당에 이렇게 많은 신들이 관계되어 있다. 제주말 “옵서 가게”는 ‘어서 오세요, 같이 가게’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살던 집 빼앗긴 신들에게, 인연이 되면 행사/전시라는 제(祭)를 차릴테니 어서 오라고, 같이 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 위에 지주있다더니, 실감 난다.

제주에는 일만 팔천 신이 산다. 그만큼 신이 많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유교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신당을 불 태우는 정책까지 실시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마을 신당이다. 하지만 최근 빠르게 도시화되면서 자연에 의지하며, 신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시멘트 덩어리만 남았다. 과연, 이것이 진보일까. 

제주, 관광, 개발에 대해 환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전시 <아마도, 황홀>에서 “신이 이사가는 날”은 단연 독보적이다. 이 땅, 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이 오랜시간 지켜 왔던 정신문화와 현재 진행 중인 개발 현황, 이에 따른 주민들의 이해관계, 사회적 쟁점을 작품 한 점으로 단숨에 이해시켜 주기 때문이다. 신당과 제주굿, 무형문화재 연구에 오랜시간 천착해 온 문봉순과 해녀, 이주민, 4∙3 유가족 등 제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 사진 작업을 주로 해 왔던 박정근 두 사람 만남의 결과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 <아마도, 황홀> 전시 입구. 산지천갤러리 4층. 사진_산지천갤러리인스타그램

관람 순서에 따라 관객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작품은 양동규의 <붕괴된 시점>(2채널 비디오, 12분, 2023)이다. 빔프로젝터를 이용한 대형 채널 사이에 작은 스마트폰이 끼어 있다. 그는 2021년 포지션민제주에서 개최된 개인전 <터>를 통해 작품 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도 얼마나 깊게 고심 하는지 보여준 바 있다. 당시 작품이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환영을 일으키는 그의 작품 설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설치 방식 때문에 전시 공간 일부분이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 또 하나의 대형 작품처럼 느껴졌던 감흥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4층은 오롯이 양동규의 작품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은 개인전이라 할 법했다.(산지천갤러리 공간 특성 상 2층부터 4층까지 각 층이 분절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작은 전시를 연달아 보는 듯한 효과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또한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을 터, <붕괴된 시점> 시리즈 중 영상 작품의 설치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는 어떤 건설 현장에 잠입한 것 같다. 위에서, 옆에서, 현장을 스케치하고 다양한 장면들을 뒤섞어 보여 준다. 건설 현장의 구조물들은 역설적이게도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이를 더욱 강조하듯이, 그는 화면마저 대칭으로 보여 준다. 마치 데칼코마니같다. 그런데 그 균형을 깨는 역할을 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다. 그는 완벽하게 대칭으로 보이는 화면 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깨버린다. 마치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무심코 화면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가 실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양동규, “붕괴된 시점” 시리즈 전시 전경. 산지천갤러리 4층. 사진_산지천갤러리인스타그램

대형 빔프로젝터 사이에서 스스로 발광하는, 스마트폰 영상은 다름아닌 나비와 올챙이 그리고 벌이다. 전체를 조망할 때 볼 수 없고,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다. 온통 시멘트와 철골 구조물 뿐인 듯 보이는 건설 현장에서 그는 아주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을 담아 왔다. 이쯤에서 제목을 다시 살펴 본다. 그가 말하는 ‘붕괴된 시점’은, 어쩌면 붕괴된 ‘제주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제주만의, 제주다운 역사 문화 맥락을 찾아볼 수 없는 도시 건축물. 이 곳이 제주인지, 서울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시점 말이다. 

▲ (좌) 박정근, “은밀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시리즈 중 일부. (우) 문봉순∙박정근(아트랩틈) “신이 이사가는 날”(1채널 비디오, 10분, 2023) 전시 전경. 산지천갤러리 3층. 사진_산지천갤러리인스타그램

역설적인 풍경이 주는 기묘한 감정은 박정근의 사진으로 이어진다. 서귀포시 예래동에 대규모로 추진 되던 휴양형 주거 단지 조성 사업이 중단된 이후, 2015년부터 흉물로 방치된 현장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이다. 잿빛 시멘트 더미로 남아있는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본다면, 더욱 놀랄 것이다. 그 넓은 폐허에서 그가 길어올린 장면들은 말그대로, 황홀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창틀 공사가 되어 있지 않은 동그랗고 네모난 창을 넘나들고 있는 것은 바로 햇볕과 바람, 무성하게 뻗어가는 눈부신 초록 식물들이다. 이 시리즈의 제목처럼 대규모 주거단지의 건축물들은 “은밀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풍화되고, 훼손되고, 분해되며 자연에 점령당하고 있다. 인류가 사라진 지구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 현장 또한 분쟁의 중심에 땅이 있다. 제주민들의 탯줄 묻은 땅, 마을 공동 목장, 신당이 있는 땅, 학살터 옆의 땅 관계없이 그저 부동산이 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제주 땅 말이다. 

한용환의 “자연스럽게” 시리즈는 개발과 반대 집회가 일상이 되어 버린 제주에서의 삶을 보여 준다. 작가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아이가 커 나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비자림로 확장 공사, 신화역사공원 개발 사업 등으로 기억하고 있다. 현장에 남겨진 폭력의 흔적과 매우 어색한 인공 조형물이 함께하고 있는 일상이다.

김명선은 제주 개발 반대 운동의 치열한 현장을 보여 준다. 르포 사진들은 설명과 함께 단순하게 병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노골적인 촌철을 던지고 있다. 각 사건들이 벌어진 시기의 제주도지사와 당시 정책 슬로건을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들이 기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사회 민주화를 열망하던 1980년대, 제주에서의 민주화운동은 4∙3진상규명운동과 개발 반대 운동으로 가시화되었다. 특히 탑동매립반대운동과 송악산공군기지설치반대운동은 이해 당사자였던 해녀 뿐만 아니라 대학생, 청년, 시민들이 대규모로 결합하여 사회 변화에 대한 갈망을 분출한 사례다. 제주도는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 군사기지 혹은 관광지로 타자화되고 있다. 국가 주도 그리고 기업과 자본 중심의 개발은 토박이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결과를 낳는다. 때문에 제주 개발의 역사는 제주도민들의 격렬한 저항의 역사, 개발 반대 운동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김명선이 보여주는 두 개 트랙의 타임라인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국제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난개발 현상은 제주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성찰해야하는 시대의 과제다. <아마도, 황홀>은 발 닿는 곳마다 공사 중이고,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관광지 제주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제주를 환기한다. 도민들과는 자연스럽게 붕괴되고 있는 제주의 일상에 대한 공감을 나누고, 관광객에게는 제주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서 제주도에 대한 단편적인 소비가 아닌 입체적인 이해를 독려한다. 전시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막중한 바, 관람 독려를 위한 글을 좀 더 일찍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른 현장에서 출품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박민희 | 시각예술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와 역사 읽기에 흥미를 갖고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